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11

본문 바로가기

한국학교 이야기 학부모 이야기

칼럼·에세이
바이올린과 함께 자라는 아이, 두 학교 사이에서 자라는 나

김윤서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학부모

베트남 호치민에서의 생활도 어느덧 6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뿐이었습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갔을 때 맡았던, 동남아 특유의 과일 향은 과연 이곳에서 우리 가족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때의 막막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와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신설 국제학교에서 1학년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한국 교육 시스템과 달리 너무 자유로웠지만, 어딘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불안정함이 있었습니다.
신설 학교라는 점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는 정해진 틀이 아닌, 느슨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보다 뛰어나게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 틈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고, 저와 남편은 그 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2학년 2학기 무렵, 우리는 고민 끝에 그곳에서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로 전학을 결정했습니다.
전학을 하자마자 심각해진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고, 결국 2학년 말이 되도록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아쉽게 2학년을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3학년이 되어 드디어 학교에 등교할 수 있었고, 낯선 환경에서 또 아이는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낯선 환경에서 그래도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건 ‘바이올린’이었습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서 아이의 눈빛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바이올린을 잡은 작은 손은 서툴고, 무거운 악기로 인해 아이의 몸은 힘들었지만, 매주 학교에서 5~6시간씩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 3, 4학년엔 써드(third) 파트에서 출발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기초적인 음을 맡으며 묵묵히 연습하는 아이를 보며, 저는 그 자세가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학년이 되어 세컨드(second), 드디어 6학년이 되어서 퍼스트(first)로 올라갔을 땐, 단순히 실력의 상승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책임감과 성실한 태도의 결과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퍼스트가 되니 더 어렵긴 해도 그만큼 성취감이 있어서 즐겁다는 아이의 말이 저를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모릅니다.
한편, 둘째는 1학년부터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영국식 커리큘럼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언어 환경이 다른 두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며, 저는 교육의 결이 다름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는 오래된 역사가 있는 만큼 확실한 뿌리와 체계가 있어 아이가 방향을 잃지 않고 성장하게 도와줍니다.
반면 영국계 학교 역시 엄격함과 체계가 있지만, 그 안에서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있습니다. 방과 후 수업으로 들었던 “창의적 글쓰기 수업”에서 자유롭게 글을 썼고, 그 글로 최근엔 자가 출판으로 소설책도 출판했습니다.
큰아이는 학교에서 한국어로 국어와 기타 수업을 듣고, 많은 차수의 영어와 베트남어를 병행해야 하는 언어의 혼란 속에 가끔은 지쳐 보입니다.
그런 힘듦 속에서도 ‘오케스트라’라는 매개체는 늘 아이에게 중심을 잡아주는 축인 것 같습니다.
음악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전하게 하고, 무대에선 언어의 장벽이 사라집니다.
그 장벽은 우리 집 안에서도 사라져, 예전에는 듣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을 매일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아이는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를 통해, 작은아이는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두 아이를 서로 다른 교육 환경에 보내며, 저는 ‘정답은 없다’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건 각 아이가 그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느냐이고, 저와 남편은 그저 그 여정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부모가 된다면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양육은 여전히 고군분투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저를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은 매일 같이 활을 켜는 아이의 바이올린 소리처럼 단조롭지만 성실하게, 그렇게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에세이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