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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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교 이야기 학부모 이야기

칼럼·에세이
시간을 걷는 박물관,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
(학부모 역량강화 문화체험 연수 소감문)

양형권 카이로한국학교 학부모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카이로한국학교 학부모 문화체험 연수의 일환으로 그토록 오고 싶었던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Grand Egyptian Museum, GEM)에 다녀왔다.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집트 고대 문명의 보물창고인 이곳은, 기자(Giza)의 피라미드 군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이집트 문명의 상징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조만간 가야지’ 하면서도 따로 시간을 내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는 더욱 뜻깊었다. 학부모님들과 함께 한국학교 버스를 타고 도착한 GEM 앞에서, 벌써부터 설렘과 경외감이 밀려들었다.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이집트의 정체성과 자긍심이 응축된 공간이다. 약 50만 점의 유물을 보관할 수 있는 이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공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고고학 박물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설계는 헤너건 펭 아키텍츠(Heneghan Peng Architects, Dublin)가 맡아 2003년 국제 설계 공모에서 당선되었고,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엮어낸 삼각형의 구조와 넓은 채광창, 기자 고원의 지형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외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 박물관의 유물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천장과 건물 구조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도 상당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3,200년 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었다. 무려 83톤의 무게를 자랑하는 이 석상은 원래 카이로 중심가인 미스르역 광장에 세워져 있었으나 GEM으로 옮겨오며 더 많은 이들의 찬탄을 받고 있다. 석상의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와 권위 있는 눈빛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고, 그 옆을 지나칠 때 마치 고대의 왕이 현대의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후로도 투탕카멘 왕이 실제로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금으로 장식된 전차, 침대, 베개, 화장 도구, 향수병, 장신구, 유리로 만든 식기와 술잔 등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실생활과 밀접했던 유물들을 내 눈앞에서 하나하나 마주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수천 년 전 실제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1922년 하워드 카터(H. Carter)가 왕의 무덤(KV62)을 발견한 이래, 투탕카멘은 ‘소년 파라오’라는 별명과 함께 고대 이집트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의 무덤에서는 약 5,398점에 달하는 부장품이 출토되었고, 이 중 대부분이 현재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으로 이전되었다. 그것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있으니 이집트인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은 그의 저서 The Rape of the Nile (Basic Books, 2004)에서 이집트 유물들에 대해 “고대와 현대를 잇는 문명의 증언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GEM에 있는 유물들은 단지 ‘과거의 잔재’가 아닌, 인간 문명이 얼마나 정교하고 숭고한 예술과 기술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은 GEM을 “빛과 그림자의 박물관”이라 평했는데, 자연 채광을 극대화한 전시실 덕분에 유물 하나하나가 마치 햇빛 아래에서 새 생명을 얻은 듯 생생했다. 관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신앙과 사후 세계’에 대한 전시관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방식을 가졌고, 그에 따라 무덤과 미라, 부장품 등에 많은 정성과 자원을 쏟았다. 단순한 미신이나 전설이 아닌, 그들의 세계관이 삶과 죽음의 영역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합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유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피라미드나 다른 정교한 석상들이 과연 저 오랜 과거의 시대에 지어지고 다듬어졌다는 것도 정말 놀랄 일이지만, 그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정말 정교하고 세밀하였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랜드 이집션 뮤지엄의 전체 구성은 관람자 중심으로 매우 잘 짜여 있었다. 유물의 연대기적 배치, 동선의 흐름, 쉬어갈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양한 언어의 해설 시스템은 외국인 방문객으로서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게 해주었다. 관람 중 책을 사서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유물 하나하나가 단지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카이로는 단순한 생활 공간이 아니라, 세계 문명의 근원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런 뜻깊은 장소에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한국학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도 말이다. 한국학교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님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며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은 단순한 견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경험은 우리 학부모뿐 아니라 앞으로 아이들에게도 살아 있는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다.

끝으로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카이로한국학교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문화와 역사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자주 마련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