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교육기관포털 온라인소식지 Vo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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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원 이야기 해외 한국어 교원 이야기

칼럼·에세이
쌤~! 그다음은요?

김혜란 파라과이한글학교 한국어 강사

“어려워요. 너무 어려워요. 선생님!”

고개를 저으면서 안 들으려 하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얼굴에 공부하기 싫은 표정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잘 구슬려서 펴게 한 역사 교과서에 관심을 돌리도록 하건만 이미 좌우로 저어댄 고개는 상하 끄덕이기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야지.’

“애들아. 여기, 역사 00쪽을 열어봐. 위에서 세 번째 줄에 [공민왕]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이 왕과 관련이 있는 [신돈]이라는 스님이 있단다.”

고려시대의 왕 이름을 읽어주고 [신돈]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만들어온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를 화면에 띄워줍니다. 한 명씩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고정하기 시작하면 이때다 싶어 금요일 밤 미리 해보았던 역할극을 시작합니다. 저는 스님도 됐다가 공민왕으로 급히 등극합니다. 무수리와 왕비로 오가던 역할도 부지기수입니다. 한글학교 교사를 하기 전에는 목소리가 남자 같아서 그게 콤플렉스였지만 외려 긍정적인 부분으로 승화시킵니다. 부지깽이로 요강 단지 두들기는 목소리일지언정 이때는 왕의 목소리에 최적화된 듯하여 근자감 충만입니다.

“우와! 선생님 그래서요? 그다음은요?”

어설프게 허리를 대고 앉았던 의자에 곧추세워 바르게 앉은 우리 토요 파라과이한글학교 8학년 학생들의 몰입감이 요즘 아이들 말로 장난 아님을 체감합니다. 그뿐일까요. 제게는 어려운 스페인어도 연구해 두어 수업에 종종 등장시킵니다. 우리 8학년에는 아쉽게도 한국어를 잘 못 하는 아이들이 두어 명 있습니다. 어머니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는 이유도 이 아이들에 대한 은근슬쩍 커가는 관심에서 우러난 것입니다. 우리 말이 서툴러 한글학교에 오는 아이들이고 잘하는 아이들과 수준별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들과 행동 발달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저는 조금은 다른 가르침의 자세로 접근하고 싶은 욕심을 부립니다. 가능한 한 스페인어 사용을 자제하는 한글학교의 지침이 있지만, 100% 한국어로만 진행하다 보면 눈 동그랗게 뜨고 교사의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결국 이해를 못 해 속 태우는 듯한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신경이 쓰입니다. 하는 수 없이 ‘10% 정도의 스페인어 사용은 괜찮지, 아무렴 괜찮지~’ 명백하고 선명한 발음으로 중요한 사건을 스페인어로 말해주면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는 아이들이 참 사랑스럽답니다.

“그래서요, 선생님? (이 데스뿌에스?)”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만 쉬는 시간이 됩니다.

“자! 다음 시간으로 이어갑니다. 다들 간식 먹고 다시 교실로 모여요~”
“네에~”

막둥이처럼 대답한 후 졸졸졸 교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한글학교 8학년 교사를 담당해 온 지 어언 10년이 다 돼 갑니다. 우리 파라과이한글학교는 중, 고등학생이 85명입니다. 아마 이 같은 학생 수를 자랑하는 한글학교가 전 세계에 많지 않은 줄로 압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겁습니다. 국어와 역사, 한자 및 토픽을 우선으로 하는 중, 고등의 교육과정을 자랑하는 것으로 멈추는 게 아닌 내용을 충실히 하고 싶은 바람으로 고민하고 골똘히 연구합니다.

“에게, 고작 그 월급이라고? 그냥 어디 나가 가족이 한 끼 밥 먹으면 되겠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김치 만들어서 판매하자고. 아무리 한들 그 월급만 못 벌까.”

이런 말들로 제게 김치 장사를 하자는 분도 계십니다. ‘김치 장사가 좋지요, 좋아요.’ 고개를 끄덕여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긴 해도 제가 한글학교 교사로 일하며 갖는 자부심은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한글학교 교사의 길, 적은 월급이라 멸시하여도 그 시선을 사소함으로 넘길 수 있음은, 아이들이 나를 향하여 ‘쌔에엠~~ 감사해요.’라고 외치는 말들이 내 심장의 뛰어대는 소리와 같이 합해져 화음 오묘한 이중창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은요 선생님? 우리 어떤 것을 말해야 해요?”

국어 시간에 모둠으로 나뉘어 말풍선을 채우고 의견을 교환하며 글 중의 메시지를 찾아 생각에 적용하며 즐거워할 때, 우리 아이들이 고국에서 너무도 먼 나라인 파라과이의 동포 자녀로 살기 때문에 자칫 간과돼 버릴 수도 있을 한글과 역사, 한자 교육이 나의 입을 통하여, 나의 준비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강물처럼 흘러감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은 정령 김칫값보다 덜한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다 해도 절대로 그 무엇과도 환산되지 않을 보석이 돼 제 마음속에서 반짝거리며 빛을 냅니다.

아이들이 한글학교를 졸업하여 각자의 원하던 곳으로 날아갑니다. 멋진 청년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다가 행여 ‘[칠전팔기! 사면초가],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서희의 담판 외교] 등을 목이 아프게 외치던 이런 선생이 있었지?’라고 기억을 해줄까? 안 해주어도 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쌤~ 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던져준다면 무지막지 힘이 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자료를 찾고 파워포인트에 생각을 담고 소망을 불어 넣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지요?